Q. 안녕하세요? 어머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황선희입니다. 첫 아이는 뇌전증/발달 장애인입니다. 뇌전증으로 인해 발달이 점차 느려졌고,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습니다.
뇌전증은 치료만 필요한 병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과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때부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글로 그림으로 강연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뇌전증을 알리고 있습니다.
Q. 아이의 뇌전증 첫 인지는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첫째가 3살 때 뇌전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폐렴에 걸렸고, 통원치료 중이었습니다. 저녁을 먹다가 대발작이 왔고, 손에 쥐고 있던 물컵이 날아갔습니다. 병원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고, 폐렴은 호전되었습니다.
하지만 발작이 계속 이어졌고, 결국 대학병원으로 전원 후 뇌전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Q. 뇌전증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뇌전증은 이전에 간질이라 불리던 병입니다. ‘간질’ 용어에 사용되는 한자의 의미가 부정적인 의미로, 질병에 대한 편견을 유발합니다. 2012년 ‘뇌전증’으로 병명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간질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뇌전증으로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발달장애 부모님들도 ‘뇌전증’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30% 정도가 뇌전증을 앓는다고 합니다. 두 질병이 유전적 변이의 상당부분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니 뇌전증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가 일시적으로 이상을 일으켜 과도하게 흥분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때 의식소실이나 발작 등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뇌전증은 인구의 1%에서 발생하며, 교통사고나 코로나19 후유증으로도 발생할만큼 원인이 다양하며,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흔한 질병입니다.
70%가 약물치료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며, 30%가 치료가 어려운 난치성이라고 하는데요. 저희 아이는 30%에 해당하는 난치성 뇌전증으로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진단을 받았습니다.
Q. 인스타그램을 보면 뇌전증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십니다.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장애 부모라면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 꿈일 것입니다. 저도 그 꿈을 꾼 적이 있습니만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잘 압니다. 그렇다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아이만을 위해 살기보다 아이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뇌전증’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뇌전증을 잘 모르거나 뇌전증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귀신 들린 병처럼 잘못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언제 일어날 지 모르는 발작 때문에 두려워하는 이도 있습니다. 제 아이가 유치원을 입학할 때 일입니다. 뇌전증을 밝히기 전까지는 문제없이 입학상담을 받았습니다. 어렵사리 아이의 뇌전증을 오픈하자 돌아온 대답은 침묵이었습니다.
침묵을 깨고 들었던 한 마디는 ‘이런 아이들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죄송해서 어쩌죠.’ 였습니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뇌전증, 발작을 이유로 거절당하거나 차별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제가 없는 세상에서도 아이가 뇌전증, 발작으로 거절당하고, 차별당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요. 제가 살아있는 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이 되길 바라면서요.
Q. 지적장애 아들과 정상발달 두 딸을 키운다고 소개하셨습니다. 장애아이와 비장애아이가 함께 성장 할 때 어머님의 양육 철학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매주 금요일 둘째 딸과 둘 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자기 전 막내와 책 읽는 시간을 꼭 가집니다. 엄마의 에너지와 시간이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틈새시간을 활용해서라도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엄마는 너희 셋 모두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자주 알려주는 것이 양육 철학입니다.
Q.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씩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순간도 있죠. 그럴 때 마음을 다잡는 말이나 생각이 있으신가요?
뇌전증,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는 밤새 경련을 하는 날이 많습니다. 그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하는 말이 “아, 잘 잤다.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 입니다. 늘어진 몸이 무거워 비틀거리면서도 웃으면서 말합니다. 힘 없이 감기는 눈을 부릅뜨려 애쓰면서 저와 눈맞춤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감히 말합니다. 세상에 이 녀석보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은 없을 거라고요. 아이가 그렇게 꿋꿋이 버티는 것을 보며 저도 힘을 냅니다. 아이가 제 본보기 이자 스승입니다.
Q. 아이와 일상 속에서 언제 가장 행복하신지, 아이도 엄마와 어느 순간 가장 행복해 하는 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거의 매일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밤이 되면 아이들이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책 읽어줘.” 첫째는 공룡과 자동차 책을, 둘째와는 전천당을 같이 읽습니다. 막내는 그림책을 가리지 않고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정말 로봇처럼 읽어주었지요.
어색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은 왠만한 성대모사가 가능할 정도로 제법 능숙하게 읽어줍니다. 저팔계 흉내도 문제없습니다. 주말이면 도서관에도 빼놓지 않고 갑니다.
처음에는 책을 있는 대로 모조리 뽑아 놓거나 시끄럽게 떠들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가는 일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사서 선생님께 부탁할 만큼 도서관을 잘 이용합니다. 아이들과 저는 책과 함께하는 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Q. 느린아이를 키우는 가족에 있어서 부부 간의 관계도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처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을까요?
올해가 결혼한 지 14주년이네요. 서로 안아주고, 격려하는 말을 자주 합니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수록 사랑이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하는 일을 응원하고, 존중합니다.
함께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거기서 비롯하지 않나 합니다. 아이들과 관련된 일도 하루 중 틈틈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공유합니다. 취향도 비슷하고 관심분야도 비슷해 함께 하는 일이 늘 즐겁습니다.
아이가 뇌전증 진단을 받고 난 후, 치료를 위해 전국을 뛰어다녔습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을 알았을 때 심한 우울을 알았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우울인지도 몰랐습니다. 갑자기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거나 출근하는 남편 뒤에다 험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요.
하지만 남편은 항상 제 편을 들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었습니다. 그 덕에 지금의 제가 있지 않나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다시 없을 최고의 벗입니다.
Q. 그림책 <뭐가 무서워>,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라는 두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출간 계기와,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는 아이가 뇌전증 진단을 받고 달라진 삶에 대한 에세이 입니다. 뇌전증 진단을 받고 가장 힘들었던 일은 아이의 병을 받아들이는 일이었습니다. 아이의 병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에 따른 변화를 모두 수용하는 것이었는데요. 그 안에서 저는 부정, 분노, 원망의 감정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그 뒤에 찾아온 감정은 자책감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제 잘못인 것만 같았고, 어떤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병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이유로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아이에게 질병이나 장애가 생기면 어떤 부모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책으로 썼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부모들이 제 글을 통해 위로와 힘을 갖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 뒤로 좀 더 글을 썼습니다.
세 아이와의 일상을 글로 옮긴 <우리아이 일기예보-오늘도 맑음>, 뇌전증 에세이<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무너지지 않는 엄마의 일상을 위한 <엄마루틴>, <내가 마인드맵을 그리는 10가지 이유>,<시를 못 쓰지만 시를 쓰고 싶어>를 썼습니다.
그리고 뇌전증으로 잦은 입퇴원과 병원진료 때문에 병원을 무서워하는 아들을 위해 그림책 <뭐가 무서워>를 썼습니다.
Q. 현재 발달장애 부모님들과 1달에 1번씩 모임도 하고, 독서 챌린지도 하고 계십니다. 어떤 활동들을 현재 하고 계시며, 그 활동들을 하시는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발달장애 엄마들과 함께하는 자조모임 ‘공모자들’을 운영하고 있어요. 발달장애나 뇌전증과 관련된 정보도 나누고요.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어려운 점이나 좋은 점 등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전문가의 개입도 중요하지만 같은 고민을 하는 엄마들이 서로에게 지지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통해 위로 받고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로 읽고 쓰는 삶을 이어왔습니다. 책이라곤 읽어본 적 없는 제가 아이가 아프고 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아이를 간호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책이 있더라고요. 서울대병원 도서관에서 우연히 인천상륙작전과 조선왕조실록을 읽었어요. 그 후로 쭉 책을 읽고 있어요.
특히 역사책이나 동기부여책을 읽고 있는데요. 서로 다른 위기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제게 큰 힘과 위로가 되기 때문이죠. 읽다 보니 저도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쓰는 삶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합니다.
Q. 최근에도 국립중앙의료원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뇌전증 환자 삶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대표적인 활동들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뇌전증 인식개선활동과정을 수료하고 뇌전증 인식개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뇌전증을 알리기 위해 강연이나 강의, SNS, 글쓰기 등을 하고 있습니다.
Q. 우리 사회가 뇌전증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환자들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갖추고 인권이 자리잡길 바라시는 지 궁금합니다.
어느 날 둘째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저 애가 우리 오빠를 이상하게 쳐다봐.” 그러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뇌전증도 장애도 다 마찬가지 아닐까요? 서로 다른 것입니다.
나와 다르게 질병을 가졌을 뿐, 장애를 가졌을 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며 주민입니다. 서로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뇌전증 환자가 발작을 해도 색안경을 낄 필요가 없습니다. 뇌전증 발작이 발생했을 때 3S를 부탁하는데요. 사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발작이 끝날 때까지 곁에 있어주기(Stay), 안전하게 지켜주기(Safe), 옆으로 눕혀주기(Side) 세 가지인데요.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고 싶네요. 사람이 서로 기대 서 있는 모습이 사람 인이 되듯 우리 서로 지지(Support)할 때 함께 빛날 수 있다고요.
Q. 어른이 된 수현이가 어떤 어른으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시나요?
제가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아이의 미래였습니다. 지금도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앞이 캄캄합니다. 여전히 거의 매일 발작을 하고 있고, 인지 발달도 더디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더디게 발달하는 인지마저 발작이 잦으면 퇴행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이의 미래보다 아이의 오늘을 생각합니다. ‘오늘 얼마나 멋지고 행복하게 보낼까.’ 그것이 제가 매일 바라는 꿈입니다.
Q.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써 인생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배우는 것이 좋아요. 글쓰기를 배웠고,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는 것을 배웠어요. 마인드맵을 배우고, 비주얼 씽킹을 공부했었죠. 요즘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다시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있고요. 영어와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어요. 배움은 제 삶에 기쁨이에요. 앞으로도 저는 계속 배우는 삶을 이어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