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가 아닌 '아이표'가 되어야 합니다

by 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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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링,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부모님들이 참 많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홈스쿨링과 공동육아가 나에게 잘 맞을 지 걱정이 참 많으시죠.

홈스쿨로 발달 장애 청소년을 양육하며, <내가 그린 오티즘> 단체와 <홈트레이닝 클래스> 등을 통해 발달 장애 아동 및 예술가들을 위한 연대에 힘쓰고 계신 윤정은 작가 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첫째는 고3이고, 작은 아이는 학교에 다녔더라면 중3일테지만, 홈스쿨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 예술 매개자로 저를 소개한지는 3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책 이야기를 나눌 때는 작가로, 아이들과 그림을 그릴 때는 미술 선생님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Q.  희랑이라는 이름이 참 예쁩니다. 누가 지으셨는지, 무슨 뜻인지 궁금합니다.

 

'밝을 희, 사내 랑'이라는 한자를 써서 '밝은 남자'라는 뜻으로 남편과 제가 지었습니다. 가운데 '희'자는 가족 돌림자이고요. 밝은 사람이 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었는데 정말 밝습니다.

장애에 상관없이 밝은 아이를 보며 깊은 감사가 나오다가도, 때로는 너무 밝기만 한 것 같아 좀 더 의미를 부여해 이름을 을지었어야 했나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Q. 희랑이가 조금 특별한 아이라는 사실을 언제 인지하게 되셨나요?

 

유아기 때부터 아이에게 유난스러움이 많았습니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저의 친언니가 조심스럽게 검사를 권해서 병원에 가게 되었고, 4살에 발달 지연이라는 표현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Q. 초등학교 입학을 연기하고 9살까지 홈스쿨을 하셨어요. 불안하지는 않으셨나요?

 

7,8세 입학 시기에는 하루에도 마음이 열 두 번 오락가락 했었습니다. 아이의 정확한 의사를 알 수 없어 저의 결정이 아이의 뜻과 같은지에 대한 걱정이 이유였습니다.

홈스쿨에 대한 불안은 없었습니다. 그 전까지도 외부 수업보다는 가정에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생활해 왔었기 때문에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싶었습니다.

8살 가을 어느 날, 아이가 스스로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고, 이듬해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아이를 가르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홈스쿨링을 통해 좋았던 아이와의 추억, 또는 깨달음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가장 좋았던 점은 아이와 저에게 주어졌던 시간적인 여유인 것 같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동물 보러 다니기, 산책 등)들을 충분히 누리고, 그런 아이 곁에서 아이를 알아갔던 여유가 좋았습니다.

입학을 하고 일과에 쫓기는 1학년을 보내면서 홈스쿨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더욱 강했습니다. 2년 전이었다면 아이도 저도 소화하기 힘들었을 게 분명했거든요.

'어떤 육아, 두 밤 여행'의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나이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이의 때에 맞추어 모든 교육이 움직였으면 좋겠습니다.

 

Q. 9살 무렵 홈스쿨 중 아이와의 기억에 남을 갈등도 있으셨죠. 어떻게 아이와 방법을 찾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홈스쿨을 하면서 아이와의 갈등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답은 아이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양육자가 아이를 다시 이해하고 수용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과정이 육아에 있어서 갈등인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저에게도 경험이 너무 적었고, 지금은 그 때보다는 성장해서 짧은 갈등으로 마무리 짓곤 합니다.

 

 

Q. 국어, 수학, 대화, 창의활동, 미술 다섯가지 수업으로 홈스쿨을 마련하셨습니다. 이렇게 다섯가지를 선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국어와 수학은 기본적인 학습을 위함이었고,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대화와 창의활동은 일상을 배우는 공부였습니다. 소통을 연습하고 나, 가족, 이웃 ,마을을 공부하는, 삶에 필요한 매우 중요한 과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희랑이는 창의활동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미술은 제가 미술 전공자여서, 접근하기 편리한 과목이라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희랑이에게서 미술에 대한 특별한 흥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제가 다가가기 익숙한 언어가 미술이었기 때문에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수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Q.  홈스쿨링을 하고 싶은 엄마들이 많이 계십니다. 용기가 없고 방법을 모르고 막연한 두려움에 잘 맞지 않더라도 공교육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발달장애 아이를 육아하는 양육자에게 홈스쿨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다음 세가지로 자가진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나(양육자)는 아이의 성인기에 구체적이고 뚜렷한 목표가 있나요?

아이의 행복, 건강 등 막연한 목표는 안 됩니다. XX 업종의 직장에서 XX까지 일을하고 퇴근 후 어떤 취미 생활을 하며 누구를 만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집에서 스스로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주변을 정리하며 살아가는 구체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두번째, 교육을 목적으로 한 양육자 모임이 있나요?

교회 공동체, 책 모임, 친절한 이웃은 해당이 안됩니다. 또래가 어떤 공부를 하고 있고, 어떤 발달로 자라고 있는지 양육자가 파악하고 아이에게 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번째, 나는 자기 회복력이 좋은 편인가요?

아프거나 다른 일로 하루를 쉬어 가더라도 다음 날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 교육의 공백을 줄일 수 있습니다.

홈스쿨은 매우 불안정한 교육 시스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장애 가정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위 세가지 항목에서 스스로 멀다고 생각된다면, 공교육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Q.  홈트레이닝 클래스를 운영 중이십니다. 홈트레이닝 클래스에 대한 자세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장애 예술과 그에 필요한 교육을 소개하면서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가정 안의 교육이 선행되어야 함을 느꼈습니다.

양육자가 아이와 아이의 장애를 바르게 이해해 가정에서 연습하고, 그 것을 공교육에서 일반화하는 고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고리가 만들어졌을 때, 진로 교육도 일상 교육도 가능해집니다. 비단 미술만이 아니라 어떤 분야로 확장되더라도, 가장 가까운 타인인 양육자가 교육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홈트레이닝 클래스는 어떻게 내 아이를 관찰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내 아이에게 접근해야 교육이 가능할 지를 같이 고민하고 실행하고 점검하는 부모 모임입니다.

 

 

Q. 다시 학교를 다니다가 초등학교 3학년, 13살 때 공교육을 중단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또래가 받는 교육(학습)이 내 아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할지, 그것이 아니라면 학교를 다녀서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이유가 있는지(이를테면 사회성 같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 무렵 아이는 학교 내에서 여러 어려움으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있었고, 이렇게 성과 없이 아까운 시간을 보내느니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자립을 위해서 공부하고 연습해야 할 수 많은 과목들이 있습니다. 그 교육을 위해 우리의 시간을 쓰고 싶었습니다.

 

 

Q. 요즘 엄마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엄마표 미술로 추천해 주실 만한 것이 있을까요?

 

아마, 제가 아이와 만들었던 방법, 온라인으로 검색한 방법은 실상 큰 의미가 없을 것 입니다. 보고 준비한 것과 매우 다르게 적용될 것이 분명하거든요. 예측 불가한 것, 그것이 오티즘입니다.

'엄마표'가 아닌 '아이표'이어야 합니다.

아이가 종이를 찢으면 찢으면 되는 종이를 종류 별로 가져다 주고, 활동 가능한 영역을 확보해 주면 됩니다. 아이가 물놀이를 즐긴다면 ,목욕시간에 넣어줄 재료들이 무궁무진 하고요.

엄마의 방식으로 주도하려 한다면 아이는 금세 흥미를 잃을 것이고, 다음 엄마와의 시간이 기대될 리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아이를 따라 가 보세요. 아이를 향한 존중은 어느 순간 엄마에게 집중하고, 엄마를 살피는 존중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Q. 책으로도 출간하신 '내가 그린 오티즘'  단체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장애 육아를 하는 양육자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 아이와의 소통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모여서 고민을 털어 놓고, 살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왜 모여야 했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은 것이 '내가 그린 오티즘'의 전시입니다. 다섯 번의 전시를 기획하며 같은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올해 저희 단체가 지원사업에 선정되었습니다. 작년과 다름 없이 양육자 중심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입니다. 보다 성장한 장애 예술을 소개하고자 성실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12월에 전시장에서 많은 양육자와 예술 관계자 분들을 뵙길 바랍니다.

 


Q. 민서와 희랑이가 긴 시간 좋은 친구로 함께 해 온 것 같습니다. 오랜 친구가 된 계기가 있을까요?

 

민서는 초등학교 1학년때 만나 중학생이 된 현재까지 쭉 함께 해 온 친구입니다. 홈스쿨을 하던 희랑이에게 또래가 필요해 만들었던 그룹 미술 수업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이후 공동육아로 이어졌습니다.

공동육아는 일반화를 연습하는 교육 모임입니다. 학교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사회성 연습, 아이들마다 지니고 있는 이런저런 어려움을 조절하는 연습 등 모든 양육자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모임입니다.

두 권의 책을 내셨습니다. 내가 그린 오티즘, 두 밤 여행, 두 책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두 밤 여행은 사춘기 아이가 혼자 밖으로 나가는 일이 늘면서 아이의 안전을 위해 세상에 아이를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쓴 책입니다. ‘이런 아이가 있습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아이입니다. 누군가에게 이리도 소중한 아이입니다. 그러니 잘 부탁드립니다.’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아이를 다시 알아가는 과정, 일 년 동안 쉼과 여행을 통해 성장한 아이를 소개하면서 다르지 않은 그저 <육아>를 전하고도 싶었습니다.

 

내가 그린 오티즘은 첫 번째 전시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적은 책입니다. 미국과 울산 그리고 영종도에 사는 아이들이 그림을 매개로 모였고, 양육자는 서로를 곁에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아이들, 양육자들이 이렇게도 모일 수 있다는, 그러니 더욱 모여 보자는, 이제 막 장애 예술 매개자가 된 누군가의 초대장과 같은 책입니다.

 


Q. <내가 그린 오티즘> 2편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구상 중이신가요?

 

발달장애 아이들의 그림과 전시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홈트를 잘 녹여 보려고 합니다.

제가 어머님들께 자주 하는 잔소리 중 하나는, 최선보다 최악을 위해 교육하자는 것입니다. 당장 몇 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장애아 육아를 하면서 최악에서 나를 건져줄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홈트와 내가 그린 오티즘의 두 번째 이야기가 장애인 가정을 최악의 순간에서 붙들어 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Q.  희랑이가 '딴 짓'도 다양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취미나, 요즘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청소년기의 희랑이는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 위주의 일상을 보냅니다. 음악으로는 드럼을, 체육은 계절 스포츠(바다 수영, 스키 등)나 산책을 많이 합니다.

매주 한번씩 저와 함께 지하철로 이곳 저곳을 다닙니다. 지하철 노선도에 있는 동네는 다 다녀볼 기세입니다. 언젠가 저 없이 혼자 다닐 아이를 상상합니다. 수시로 혼잣말을 하고 상동행동이 불쑥 나오더라도, 그게 무슨 장애가 될까요.

다음 식사 때 해 먹을 요리 재료가 있는지 없는지 냉장고를 살피고, 오후마다 돌아다닐 코스를 궁리하고, 나이마다 계절마다 장소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아이입니다. 곁에서 보는 사람이 부러울 만큼 딴짓이 많고 누구보다 바쁜 청소년입니다.  


Q. 어머님 한 사람으로써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다면 말씀해 해주세요.

 

<내가 그린 오티즘>이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공동체형 에이전시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직장이지만 일만 하지 않는, 일상 공유가 가능한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타 지역의 유사한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들과의 네트워킹을 만드는 것이 또 하나의 꿈입니다.

장애 예술을 매개로 이 꿈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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